책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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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여성: 우리가 알고 있던 선사시대의 오류책과 영화 2025. 2. 17. 10:17
고고학 박물관의 전시물을 보면 선사시대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익숙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돌도끼를 든 거대한 남자 원시인, 그리고 그 뒤에서 아이들과 함께 풀을 찧는 작은 여자들.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채집과 육아를 담당한다는 이 뻔한 구도. 하지만 이 구도가 과연 실제 선사시대의 모습일까?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책이 있다. 마릴렌 파투-마티스의 『파묻힌 여성』이다. 이 책은 선사시대 여성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고고학과 역사학의 시선을 통해 뒤집는다. 선사시대 여성을 누가 만들었나?책의 도입부는 흥미로운 질문으로 시작한다. “선사시대 여성을 누가 만들었나?” 이 말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19세기 이후 남성 중심의 학문이 어떻게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여성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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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큐레이터: 건축과 디자인 전시의 새로운 가능성책과 영화 2025. 2. 15. 14:19
건축과 디자인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공간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며, 시대의 흐름과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행위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건축과 디자인 전시를 어떻게 기획하고 구현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론적 틀을 찾기 어렵다.그런 점에서 『뉴 큐레이터: 건축과 디자인을 전시하기』(The New Curator: Exhibiting Architecture & Design)는 국내에 꼭 필요한 책이었다. 원서는 2021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서는 안그라픽스가 2023년 초판을 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의 한국어판이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 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의 큐레이터였던 김상규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건축 감수를 맡은 정다영 학예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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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건으로부터 읽는 문화와 디자인책과 영화 2024. 11. 8. 23:46
예전에 문화인류학 관련 강의에서 에 관해 들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칼이 주먹도끼이고, 시대를 거쳐 현대에는 얼마나 강력한 무기로 변했나 하는 주제였다. 내용은 이렇다.금속 기술이 생기며 청동칼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철기 문명 시대에는 오늘날 칼의 소재와 생김새가 유사한 창, 검이 생겨났다. 산업화가 시작되고 주방 문화가 발달하면서 식칼이 보급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칼은 얼마나 세련되고 정교해졌을까? 바로 엽떡 플라스틱 그릇의 비닐을 뜯는 3cm 남짓의 플라스틱 도구다.뻔한 결말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듣다가 완전 뒤통수 맞은 것처럼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다.이번에 소개 할 책은 박현택의 『오래된 디자인』(2013)이다. 최근에 국립박물관 문화상품에 대해 연구하다 박현택이라는 선생님을 접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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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를 나온 여성들책과 영화 2024. 2. 23. 14:10
역사를 여러 시각에서 다층적으로 보는 일은 어려우면서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정부나 역사가가 기술한 역사 말고도 숨은 이야기가 더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아를레트 파르주의 『아카이브 취향』이나 카를로 긴츠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는 보물과도 같다. 평민의 일상, 낮은 계급의 문화 등 사회 주변의 것들을 모아 역사의 빈 부분을 메꾼다. 아마도 '여성'은 역사에서 빈 부분 중 가장 크고 중요한 퍼즐 조각일 것이다.2019년은 바우하우스 개교 100주년이었고 기념 활동 중 안그라픽스에서 안영주의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를 발표했다. 책의 부제목은 "축소되고 가려진 또 하나의 이야기"다. 바우하우스에서 수학하고 활동한 7인의 여성 디자이너를 소개하고 그들 작업이 오늘날 디자인, 공예, 미술,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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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어야지" 목록, 세 번째책과 영화 2024. 2. 4. 17:12
"언젠가 읽어야지" 목록의 양이 연구 기간만큼 쌓여가는 것 같다... (몹시 슬픔) 이번에는 지인으로부터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의 책을 소개받았다. 돈을 모아 두꺼운 외투를 장만하기 위해 구두 굽이 닳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으며 허리띠 졸라매는 남자의 이야기 《외투》, 어느 날 사라진 자신의 코(nose)를 길에서 마주쳤는데 높은 계급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코》. 이정도의 내용만 들었고 사회 풍자하는 시각이 유쾌하고 황당하기까지 해서 꼭 읽고싶더라. 예전에 읽었던 프랑스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이 생각난다. 삶, 죽음, 실존에 관한 철학적 내용인데 이야기 자체는 아기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는 아기. 일례로 아기는 자신의 첫 말(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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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어야지" 목록, 두 번째책과 영화 2024. 1. 25. 19:12
나는 책 욕심쟁이고 지금은 연구에 발목 잡혀 아무거나 읽을 수 없다. 연구서만 읽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서.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여러 책에 매료되는 나약함은 여전하다. 표지가 예뻐서, 제목에 공감되어서, 어디서 들어본 작가 이름이라서, 베스트셀러라서, 나한테 필요한 것 같아서 등등 이유도 많다. 결국 나는 병에 걸렸다. 언젠간 읽을 수 있도록 사진으로 기록하는 병. 취향과 가치관은 계속 변하기에 아마도 연구가 끝날 즈음에는 그 책들을 기억도 못할테지만... 아니야 왠지 읽을 것 같아! 그리하여 지난번 "언젠간 읽어야지" 병렬식 독서편에 이은 두 번째, 나를 매료시킨 도서들이다. 역사, 인류학 "언젠가 읽어야지" 목록최근에 '병렬식 독서'라는 개념을 접했다. 두 권 이상의 책을 이거 읽었다가 저거 읽었다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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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읽어야지" 목록책과 영화 2024. 1. 24. 12:47
최근에 '병렬식 독서'라는 개념을 접했다. 두 권 이상의 책을 이거 읽었다가 저거 읽었다가 하는 방식의 독서를 의미한다. 하나의 책을 온전히 읽고 끝맺음 짓지 않고 오늘은 이 책을 읽다가 덮고 다음 주에는 다른 책을 시작하는 식이다. 민음사 TV(민음사 유튜브 채널)에서 편집자들 중 병렬 독서자가 자신이 병렬 독서 중인 책들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보았고,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니!' 하며 기뻐했다. (ㅋㅋ) 저마다 병렬식 독서 이유나 방법에 차이가 있을텐데, 나는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읽거나 한 작가의 최근 작품부터 초기작까지 골라 읽는 편이다. 이유에 관해서는 다른 게시물에서 언급한 적 있다. 나는 단면적인 읽기보다 다각도에서 보는 방식을 선호하고 이해도도 높다. 아무튼! 내가 하는 짓이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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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 생각해보며 연말 맞이하기(연말 영화 추천)책과 영화 2023. 12. 23. 00:59
이틀 뒤는 성탄절이고 아홉 번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 백화점에서는 연말을 위한 음식, 장식, 물건을 팔고 SNS에서는 파티 공간과 음악을 마구 추천해 준다. 구경하는 일만으로도 들뜨게 되는 연말! 나도 가담하여 연말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영화를 추천한다. ※ 로맨틱 코미디, 귀여운 애니메이션, 따뜻한 가족 드라마 아님. 세상에 대한 회의감 또는 비관적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하기 ※ 첫 번째 추천 영화 영화의 첫 장면은 열두 살 소년 자인이 살인미수 죄로 수감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인은 판사를 향해 자기 부모를 고소하고 싶다고 말한다. 판사가 고소 이유를 묻자 자인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반대편에 앉아있던 자인의 부모님이 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