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더욱 실감나게 즐기고 싶다면 대구근대역사관 방문을 추천한다. 대구근대역사관은 중앙로역과 대구역 가까이에 있고, 다른 근대역사 거점과 도보로 접근이 가능하니 거점을 연결해 체험하는 것도 좋겠다(물론 여름 제외).
*본 게시물에서는 상설전 내용중 근대기만 중점으로 다루며, 따라서 현대사 부분은 생략하였음
대구근대역사관은 근대 대구 역사를 전시하기 위해 2011년 1월 24일 개관한 대구시 공립박물관입니다. 1932년 건립되어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건물로 이용되어온 이곳을 대구 근대사를 전시하는 문화시설로 만들었습니다. 건물은 대구시 유형 문화재 제49호(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시실과 체험실은 1층과 2층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출처: 리플렛 <대구, 박물관에 가보자!>,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
1층에는 상설전시실이 있고 2층에 기획전시실과 체험학습실 등이 있다. 상설전에서는 대구의 근대역사를 크게 세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는 대구읍성 훼철을 통해 보는 전통도시 해체와 재구성, 두 번째는 대구에서의 독립운동과 국채보상운동, 세 번째는 교육과 문화로 구분하여 대구 근대시기를 더욱 세밀하게 살펴본다.
대구에 여행가면 역사나 길거리에서 '경상감영'이라는 문구를 자주 보게 된다. 대구에서 가장 의미있는 장소로 추측하며 대체 무엇인가 궁금했던 찰나에 대구근대역사관에서 그 궁금증이 풀렸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8도에 관찰사(감사)를 파견하였는데, 관찰사가 근무하는 관청(오늘날의 도청)을 '감영'이라고 부른다. 즉, 경상도를 관할하는 관청은 '경상감영'이다. 경상감영은 조선 개국 이후 경주, 상주, 칠곡, 안동을 거쳐 1601(선조34)년 대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제국 때 일제에 의해 개편과 변화를 거듭하여 본래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현재는 일부만 복원되어 공원화 되었다.
경상감영뿐 아니라 대구의 전통시대 상징이었던 대구읍성 또한 사라졌다. 대구읍성은 1590(선조23)년에 토성으로 조성, 임진왜란 때 파괴된 후 1736(영조12)년에 석성으로 다시 축조하였다. 프랑스 탐험가 샤를 바라(Charles Vart)가 1888~1896년 조선을 여행하고 작성한 『조선기행』에 대구읍성 묘사가 있을정도로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그러나 1906년에 경상북도 관찰사 서리 박중양이 대한제국 정부의 허가 없이 일본인 요구에 의해 읍성을 헐고 끝내는 철거까지 하였단다. <대구읍성 철거보고서> 내용에 의하면, 박중양은 성첩이 낡고 붕괴되어 행로에 방해되고 위험하다는 이유, 성첩 철거로 인해 넓은 도로와 상가를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구읍성을 철거하였다.
대구근대역사관에서 식민지 구축을 바라보는 또 다른 요인은 바로 철도 설치이다. 식민지에 철도를 조성한다는 뜻은 근대 문물이 유입됨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침략 정책의 도구로 이용할 수도 있다. 대구·경북지방 최초의 철도인 대구역은 1905(광무9)년 1월 1일 경부선 전 구간 개통과 함께 운행을 시작하였다.
위의 사진은 부영버스영상체험실 전경이다. 부영버스는 1929년 7월 1일 도입되었다. 영상체험실은 근대 대구거리를 가상으로 재현하고 4호선 기준으로 경로를 계획하여 마치 버스 여행처럼 연출하였다. 식민지화 된 1930년대 대구의 모습은 전신주가 있고 일본식 혹은 서양식 건물이 있어 언뜻 오늘날과 비슷해 보인다. 그만큼 전통도시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대구근대역사관에서는 대구의 근대기 요인을 외세에 의한 해체와 재구성으로 본다. 대구근대역사관의 '대구근대연표'에 따르면 더 정확한 시기는, 조선말기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과 대한제국기 1859년 8도 폐지 및 대구도호부에서 대구부로 개편이다. 연대기에 따라 단순히 해당 연도의 사건을 시작 지점으로 삼을 수 있으나, 근대화 영향을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는가 하는 일은 역사박물관의 역사 서술 방향키가 되기도 한다.
각 역사박물관의 근대기 서술 시작 시점과 첫 유물이 무엇인지는 요즘 나의 관심사이다. 조만간 별도의 게시물로 공개할 예정인데, 예를 들어 서울역사박물관의 근대기는 지식인들이 과학과 서양 학문을 배워오는 시점부터 시작한다.
대구 관점에서 서술하는 독립운동에도 재미있는 부분들이 있다. 첫 번째, 국채보상운동 코너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보통 역사박물관 전시에서는 하나의 주제 아래에 여러 사건을 병렬하여 개개의 사건을 작게 조망한다. 그러나 대구근대역사관에서 독립운동과 관련한 코너는 크게 <대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코너가 별도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고, 그 공간 한 면의 반대에 국채보상운동 패널이 조성되어 있다. 이 국권회복운동은 대구의 출판사 광문사(廣文社)의 사장 김광제(金光濟)와 부사장 서상돈(徐相敦) 주도로 시작되었고, 모금 운동이 각계각층과 타지역에도 전파되었다. 대구근대역사관에서는 아마도 대구 중심의 운동이 광범위한 역사적 사건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을 유의미하게 여겼으리라 추측된다.
<대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는 설명 패널과 모형 및 영상, 관련 유물을 진열한 전시대로 구성된다. '대구, 대한독립을 외치다' 모형 및 영상에서는 국채보상운동의 서상돈, 조선은행 폭파 장진홍, 3.1만세운동 주도자 이만집, 근우회 창립자 정칠성 등 대구의 대표적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그들의 업적을 소개한다. 지도모형 옆의 스크린에 배우가 등장하여 본인의 사건을 설명한다.
바로 오른편에는 이러한 사건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장진홍의 옥중서신, 의병이 사용하던 총, 대구사범학교 졸업생들이 발간한 기관지, 김광제의 상소문, 국채보상모집금액표 등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아쉬운 점은 이전의 지도모형과 영상에서 본 사건의 유물 중 근우회 관련 자료가 없다는 사실이다. 여성 인물을 남성 인물과 동등하게 조명하였음은 의미있으나, 유물 제시를 통해 그 의미를 이어가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대구근대역사관에서는 일제강점기 배경에 관하여 두 개의 패널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위치상 독립운동과 국채보상운동 코너 사이에 있으며,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와 배경을 설명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첫 번째 패널은 일제가 대구 행정 기구를 모조리 장악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시설을 설치하여 조선 사회를 억압하였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패널은 일제가 경제·사회·문화는 물론이고 대구 사람들의 일상생활까지 통제하였으며 전쟁물자 보급을 이유로 대구의 자원을 수탈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서술 관점은 앞서 언급한 근대화 요인을 무엇으로 보는가 하는 물음과 관련이 있다. 대구근대역사관에서는 조선인의 저항 계기를 억압과 통제로부터 발현되었다고 보는듯 하다. 가령 타기관에서는 억압과 통제를 여러 요인 중 하나로 간주하고, 오히려 거국적인 결심으로부터 자주적으로 저항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역사를 광범위하게 다루는 국립 박물관의 경우가 이러하다).
근대시기 대구의 문화와 관련한 코너는 대구근대역사관에서 비중 높은 코너 중 하나이다. 근대시기 대구의 음악, 미술, 문학 활동을 소개하며, 각 분야에서 대구를 빛낸 대표 작품과 작가를 함께 소개한다. 민족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작품들이 있다. 이인성 화가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던가 유명 미술관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강렬하고 작품성이 높아 인상에 남았는데, 이렇게 만나 반가웠다.
교육 코너에서는 대구를 '근대교육의 산실'이라고 소개한다. 근대기 대구지역에 조성된 교육 시설과 학생들이 오늘날 대구가 교육도시로 명성을 이어오는데 기초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대구에는 여성을 위한 교육 시설도 있었다. 경북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신명학교(신명고등학교 전신)는 1907년 선교사 브루엔 여사에 의해 개교하였다. 1926년 개교한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경북여자고등학교 전신)는 대구 유일의 조선인을 위한 여자 중등교육기관이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과거 경상도에서 여자는 지위가 아주 낮고, 대구에서 유독 그러했다고 한다. 대구의 여자 교육기관을 보며 그 말이 생각났다.
대구근대역사관 건물은 1932년 대구 지점 조선식산은행이었던 건물을 새롭게 꾸며 사용하고 있다. 1954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산업은행 대구 지점으로 이용되었고, 2003년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한국산업은행이 문을 닫은 2008년에 대구광역시가 대구도시공사로부터 기증받아 대구근대역사관이 2011년 1월 개관하였다.
대구근대역사관에서는 이 건물을 '조선식산은행 당시의 르네상스 양식의 원형이 잘 남아있다'고 소개하며 건물 곳곳에 당시 건물의 흔적을 볼 수 있도록 연출하였다.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만들어진 건물은 아래쪽 벽은 화강석을 다듬어 쌓고, 위쪽 벽은 타일을 붙여 다양성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처리한 정면의 장식과 수평선을 강조한 지붕 슬라브 처리 등 르네상스 양식의 원형이 잘 남아있습니다. 계단·천장·문 등이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또 다른 볼거리가 됩니다.
-출처: 리플렛 <대구, 박물관에 가보자!>, 대구문화예술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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