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제철과일에 관해 이야기 나눈적이 있다. 그 자리에는 딸기가 봄철 과일이라고 믿는 사람, 초겨울 과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기후 영향에 관한 문제 없이도 마음껏 과일을 키워 먹을 수 있다. 제주도에서 망고를 키우고 전북 완주에서 커피콩을 키우니까 말이다.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물음표를 남겼다. 이불속에서 귤을 까먹고, 더운 날 껍질채 먹는 복숭아의 가치가 덜해진다는 것이. 과일이 덜익어 빙수를 먹지 못하는 실망을 겪지 못한다는게 아쉬웠다. 많은걸 누리는데 그만큼 경험하지 못하는게 말이 될까? 이 물음의 꼬리는 전시장에서 모래를 밟는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피크닉에서 선보이는 <명상(Mindfulness)>은 우울, 불안, 중독 등 현대인이 겪는 여러 심리적 장애들을 치유하게 하는 명상의 힘을 회화, 영상, 공간디자인 등의 작품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된 전시다.
마인드풀니스는 '마음챙김'이라는 의미다. 명상 문화에서 구체적 명상 방법을 일컫는 용어다. 불교의 명상에 뿌리를 둔 단어다. 수동적 주의집중(bare intention), 알아차림(noting), 깨어있음(awareness), 주의깊음(attention) 등으로도 번역된다.
'내심 외경'이라는 불교 용어가 생각난다. 사람은 내 속에서 보고 있는 것을 밖에서 찾아서 보게 된다는 뜻이다.
내 마음이 지옥이면 내가 사는 세상도 지옥으로 느낀다.
전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복잡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지, 수행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 행복하고 유의미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 명상 입문자들이 처음 갖게 되는 여러 의문들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풀어가며 전개된다.
컬트의 제왕이라 불리는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미야지마 타츠오 등 묵직한 거장의 이름들과 함께 젠틀몬스터, 카페 어니언 등 화제의 공간들을 기획한 패브리커와 구글이 주목한 예술 그룹 오마 스페이스 등 다양한 커리어의 작가들이 눈에 띄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실제 삶 속에서도 수행을 실천하는 명상가라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90세의 거장 박서보 화백도 신인 작가 원오브제로(1OF0)와 짝을 이루어 7점의 단색화를 선보인다.
한편, 이번 전시는 ‘사회적 거리 두기’ 차원에서 과밀을 막고 관람객 간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100% 사전 예약제를 실시한다. 예매 페이지를 통해 방문 날짜와 시간을 미리 지정해야한다. 전시는 오는 9월 27일(일)까지. 전시 안내 및 예약 정보는 피크닉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르도(Bardo), 죽음과 함께하는 삶(Being with Dying)
중간계를 일컫는 티벳 불교 용어 바르도. 입구에서 얕게 풍겨오는 향 냄새. 지하 공간 축축하고 컴컴한 공간 한가운데에는 빔프로젝터에서 나오는 빛줄기만이 비실비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촬영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바닥에 영상이 비춰지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모래, 잿더미가 있다. 귀퉁이 부분에 향이 꽂혀 있다. 공간 안에는 <티벳 사자의 서> 본문을 읽는 목소리로 가득찬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때쯤 보이는 향 연기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귀에 담는다.
차웨이 차이(CharweiTsai)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개인의 관심사를 통해 보편의 가치에 접근해온 대만 출신의 현대 예술가
미야지마 타츠오(Miyajima Tatsuo), 다섯 개의 마주하는 원(Five Opposite Circles)
디지털 카운터로 구성된 다섯 개의 원. 천천히 깜빡이며 숫자가 바뀐다. 컴컴한 실내에는 빨강, 초록의 전자 불만이 있다. 가상의 영안실인 '바르도'를 지나 이곳에 오니, 또 다른 세계에 온듯함. 숫자는 느리게 흘러가지만 왠지 답답하다. 현실에 두고 온 시간이 나를 붙잡는다.
박서보+원 오브 제로(PARK SEO-BO + 1OF 0), 수행(Parctice)
박서보의 수행을 담아낸 작품들. 국현미 서울관 2019년에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라는 타이틀로 화업 60주년 기념 성대한 회고전 했다. 젊은 작가 원 오브 제로는 수행자의 작품을 활용해 공간 기획을 했다. 마치 작은 작품들을 따라 오르다보면 회색의 큰 작품. 어느 목적지에 도달하는것 같은 공간이다.
자오싱 아서 리우(Jawshing Arthur Liou), 순례자의 길(Kora)
'코라'는 순례, 혹은 명상을 뜻하는 티베트 불교 용어. 사원이나 탑, 높은 산봉우리 등 신성한 장소 주변을 돌면서 이루어지는 수행을 일컫는다. 이때 수행자는 경전을 돌리거나, 만트라를 읊조리거나, 염주 알을 세거나, 반복적으로 엎드려 절을 하기도 한다.
바닥 방석에 앉아 와이드형의 영상을 보는 방식이다. 영상 속에는 티베트 고원, 에베레스트 풍경이 펼쳐진다. 느리게 걸으며 촬영한듯한 모습. 축축해보이는 땅과 줄줄 흘러가는 강을 보여주기도 한다. 1인칭 시점의 카메라. 시점에 따라 영상을 보는 우리도 같이 걷는듯 하다. 가끔 주변이 희뿌옇게 보이기도 하는데 숨이 차오르는 (고도가 높아서) 표현 같기도 하다. 작가는 2007년, 딸을 잃은 깊은 슬픔에 빠져 지내다가 불교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은 것을 계기로 수년 뒤 티베트 서부 여행을 계획했다. 라사에서 출발해 티베트 고원, 에베레스트를 지나는 대장정. 그 4일간의 코라를 기록하여 이 작품을 탄생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영상 작품을 통해 함께 순례의 길을 걷는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 순례를 순례로 만든다.
오마 스페이스(OMA space), 알아차린다는 것(Awareness) / 느리게 걷기(Slow Walk)
나무, 회랑, 모닥불, 토템, 탑과 같은 수직의 물체를 중앙에 두고 주위를 원형으로 도는 의식. 고대 나스카의 지오글리프에서부터 오늘날 사르트르 성당의 미로에 이르기까지.
이중 나선형의 경로. 중심부를 향해 천천히 돌아 걸어가도록 설계 되었다. 관람자는 양말을 벗고 헤드셋을 낀 채로 이 길을 천천히 걷는다. 헤드셋에서는 물, 바람 등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 중심부로 걸어들어가면서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발에는 굵은 모래, 조약돌, 밧줄같은 재질이 밟힌다. 밟을 수록 끝이 다가옴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마르코 바로티(Plastique Fantastique+Marco Barotti), 숨쉬는 공간(Breathing Volume)
거대한 설치 작품. 생명체만이 하는 호흡.
https://vmspace.com/report/report_view.html?base_seq=MTA4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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