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과 영화

길 잃기 안내서

728x90

석사과정 때 친구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았다. 당시 우리가 방문했던 독립서점에서 큐레이션 한 책 중 하나였고, 친구는 별 뜻 없이 내게 선물했던 것 같다. 책을 받고 나는 엄청 뜬금없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길을 잃으라니, 게다가 안내서까지 들고 길을 잃는다는 게 말이나 되나?
그리고 박사과정, 예비심사 후 길을 잃었고 뜬금없이 이 책이 눈에 들어와 다시 읽었다. 우리는 때때로 길을 잃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다보면 내가 가는 방향을 부정당할 때가 온다. 길을 잃으면 사람은 당황하게 되고 포기하고 싶어 진다. 그럴 때 『길 잃기 안내서』가 필요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에도 '길 잃기'가 있었다. 1527년 스페인 국왕의 후원 아래 알바르 누네스 카베사 데 바카(Álvar Núñez Cabeza de Vaca)와 원정대가 현재의 북아메리카 곳곳을 탐험했던 일이 그 시작이다. 그들은 길을 잃고 헤메다 원주민과 싸우기도 하고 질병에 의해 동료를 잃기도 했다. 지형, 기후, 생물, 언어 등 모든 것이 스페인과 달랐고 방향과 동료를 잃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카베사와 원정대가 원주민과 더불어 살며 그곳에 적응할 무렵 스페인에서 다른 군대를 보냈다. 카베사와 원정대는 원주민과 스페인 군 간의 다툼을 중재했다고 한다. 원주민을 설득하고 스페인 군과 무력으로 싸우기도 했다. 그 시점에 카베사와 원정대는 이미 길 잃은 사람이 아니었다.

*카베사와 원정대 이야기는 나중에 꼭 읽어보고 싶다!

 

유럽인 최초의 아메리칸 | 까베자 데 바까 - 교보문고

유럽인 최초의 아메리칸 |

product.kyobobook.co.kr

 
리베카 솔닛은 위대한 탐험가의 상실과 변화를 통해 우리 인생에 관한 통찰을 내놓는다. 카베사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단순히 방향을 잃고 임무 실패에 좌절한 사람이 아니다. 모든 걸 잃은 그 순간부터 그의 새로운 탐험이 시작되었다. 리베카 솔닛은 이를 두고 "제 영혼이 겪은 특별한 변신"이라 표현하며 그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카베사와 있던 원주민은 새로 온 스페인 군대와 카베사가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해 뜨는 곳에서 왔지만 그들은 해 지는 곳에서 왔고, 우리는 병든자를 낫게 했지만 그들은 건강한 자를 죽였고, 우리는 맨몸에 맨발로 왔지만 그들은 옷을 입고 말을 타고 창을 들고 왔고, 우리는 아무것도 탐내지 않았고 가진 것을 무엇이든 내주었지만 그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빼앗았고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탐험가 이야기 외에도 리베카 솔닛이 겪은 다양한 경험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그녀는 '먼 곳의 푸름'을 길 지표로 삼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평생 푸름을 좇아 살았던 이브 클랭을 떠올린다. 그녀는 이렇게 상실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통해 자기 생(生)의 통찰을 전한다.
몇 가지 이야기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내년, 혹은 언젠가 이 책을 다시 읽을지도!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