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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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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다큐멘터리, 드라마 ㅣ 한국 ㅣ 79분 ㅣ 2018.10.31 개봉
감독: 추상미

 

2019년 12월 25일 성탄절, 다른 학생들은 다 나가고 나 혼자 기숙사에서 다큐멘터리를 봤다. 기적같았던 12월 24일의 석사학위논문 심사를 마치고 이러저러한 조교 업무도 마치고 깜빡 잠이 들었다 깨니 성탄절. 할 일이 더 남았지만 심사 통과를 자축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넷플릭스부터 켰다. 석사과정 내내 속세를 멀리하겠다고 꾹 참았던 영화! 성탄절 축하와 나 자신을 응원하는 영화로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선정한 셈이다.


추상미 감독은 폴란드 소설 <천사의 날개>를 보고 폴란드의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를 영화화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루터기'라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배우를 모집했고, 새터민 지원자들이 많았다. 추상미는 영화 리서치를 위해 폴란드에 직접 가기로 했고, 지원자 중 '이송'이라는 배우와 함께 여정을 시작했다. 이송은 다른 새터민들처럼 탈북 과정에서 경험한 마음의 상처,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영문도 모른채 폴란드로 오게 된 전쟁고아들의 모습과 추상미에게 쉽게 자신의 상처를 꺼내놓지 못하는 이송의 모습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김일성은 북한의 아이들을 동맹 국가들에게 보냈고, 이 다큐멘터리는 나라 중 하나인 폴란드에 초점을 두었다. 즉, 폴란드에만 1,500명의 전쟁고아가 이송되었고, 세계에는 더 많은 조선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 전후 경제 복구를 위해 북한으로 아이들이 돌아갔다는 것, 그리고 사실 전쟁고아 중에는 50%가 남한 아이들이었다는 것, 심지어 남한에서는 아이들을 되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전쟁을 시작 할 때에나 전쟁이 끝난 뒤에나 북한도 남한도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지난 대학원에서의 4학기 동안 '기억', '기록', '기념'에 관한 내 전담교수님의 고민은 내 고민이 되어버렸고, 나는 기념관을 중심으로 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다. 논문을 쓰면서 앞으로의 어린이들에게 과거의 기억을 알려준다는 것, 그리고 반대로 아이들의 입장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역사의 증언자는 아주 오래전에 생을 마감했고, 현재는 흔적만 남아버린 이야기를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상에서 추상미와 이송은 건물의 외벽만 남은 고아원을 훑어보며 아이들의 일상 모습을 상상했다. 나의 4학기 프로젝트 주제는 '임시정부와 교육, 인성학교'에 관한 것이었는데, 중국 땅의 임시정부 건물은 존폐의 위기에 놓였으며 인성학교는 흔적도 없이 터만 남아있다.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없어질 위기에 놓인 공간들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2020년의 한국 어린이들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어떻게 이해할까?

피터 N. 스턴스는 그의 저서  『세계사 속의 어린이』에서 "어린이는 직접적인 기록을 별로 남기고 있지 않다."라고 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기록할 수 있는건 일기 뿐이었을 것이다. 북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자신들을 돌봐주었던 고아원 선생님들에게 지속적으로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들이 그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통해 당시 아이들이 폴란드에서의 생활과 선생님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편지 발송이 어느순간부터는 약속이나 한듯이 중단되었고, 그 이후의 아이들 소식을 알 수는 없었다고 한다. 나도 폴란드 고아원의 선생님들 만큼이나 아이들의 소식이 궁금했다. 전후 북한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다큐멘터리 속 선생님이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현재의 나나) 궁금증의 끝은 한숨과 절망뿐이었다. 다큐멘터리 내용 중에는 이송이 추상미와 여행하면서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송의 마음 속 진짜 상처를 추상미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나는 그 모습이 마치 어른과 사회에 대한 아이들의 신뢰를 보여준다고 느꼈다. 과거의 아이들은 도구화 되었고, 그 어디에서도 보살핌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의 아이들은 자유롭고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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