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때는 인풋(input) 취하는 일에 몰두했었다. 어떤 선생님은 자신은 이제 인풋에 관심이 없고 자기만의 아웃풋(output)을 너무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그는 해외에서 유학한 학자인데 지적으로 훌륭하신 분이라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비평문 한 편은 뚝딱 쓸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나의 아웃풋을 내기 위해서는 그간의 연구 경험을 모아 모아 압축하고 심도 있는 자기 검열을 거쳐야 하니까 말이지. 그러니 인풋 취할 시간과 에너지를 아웃풋에 투자하는 일이 더 효용가치 있는 거지. 그래서 나는 그분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아웃풋에 몰두하는 사람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지금의 나는 인풋에 엄격하고 아웃풋에 관대한 사람이 되어있다. 아직 내 수준에 인풋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일. 그러나 나는 가끔 어떤 인풋에 의해 엄청나게 압도 당하거나 압박을 느낀다.
어떤 사건 혹은 이론을 공부할 때 단편적으로 차근차근 이해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합적이고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이 있다. 내가 바로 후자. 예를 들면 기사, 드라마, 영화, 소설, 비평문 등 어떤 자료를 접하든 간에 여러 가지를 펼쳐놓고 이거 보고 저거 보며 나만의 입체 형태를 만들어간다. 그렇지 않고 하나의 사례만 봐야 한다면 내 이해도는 거기서 그쳐버리고 만다. 누군가 나를 보고 집중력 낮고 정신 사나운 사람인 거냐 물었다(맞는 듯).
이러한 방식은 어떤 사건 혹은 이론을 다각도에서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반대로 너무 몰입해 버려서 에너지와 생기를 다 빼앗겨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심한 두통이 생길 때도 있다. 어떤 학습에는 무력감이 뒤따르는 경험, 당신은 이해할 수 있을까? 지식을 알아갈 때마다 지적 기쁨을 느끼기보다 우울함이 커진다. 글과 나만 있는 순간에는 더 그렇다.
모 선생님은 "머리가 아프면 글을 써버려!"라고 했다. 거기에 내가 "그건 아웃풋이 아니고 배설이잖아요." 했고. 선생님이 어이없어하면서 "의식의 흐름대로 쓰니까 그렇지. 구조와 논리가 있는 글을 쓰면 되는 거지." 했다.
나는 이제 아웃풋에 얼마큼의 훈련이 필요한가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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