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가치관에 의해 혼란을 느낀 경험이 있는가? 이를테면 자랑이나 (대표적으로 인스타그램이 있지) 충고, 조언, 평가, 판단 말이다. 숱하게는 알고리즘에 의한 콘텐츠나 광고만으로 사람이 지칠 수도 있다. 인정을 갈구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를 지켜내기란 어렵다.
건축 디자이너로 일하던 때 회사 사장님이 "소비 사회에 휘둘리면 안 돼. 알고 돈을 써야 해"라며 주체적인 의식으로 살라 강조했었다. 나는 동기들에 비해 월급을 많이 받았고 너무 어렸고 술과 클럽에 돈을 쓰며 사장님이 말했던 '소비 사회'에 잘 휘둘렸다. 가치 판단 없이 살던 탓인지 쉽게 소모되었고 회사도 그만두었다. 그리고 누가 『월든』을 읽길래 멋져 보여 따라 읽었다(이마저도 휘둘림).
월든(Walden)이라는 단어는 '숲 속의 생활'이라는 뜻이고 실제 이탈리아 북부의 알프스 산맥과 인접한 동네에 숲 속 공동체의 역사를 다룬 Walden museum도 있다. 그러나 책 『월든』에서의 삶은 이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19세기 저작 중 "불멸의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
『월든』은 이 책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자전적 수필집이다. 월든에 살았던 이 남자는 아주 확고한 가치 판단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으로 일하며 살다 전부 때려치우고 숲에 들어갔다. 월든 호숫가 근처에 통나무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자급자족하는 생활 체계를 2년간 시도했다. 필요할 때는 측량이나 목수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가 현재까지 명성 높은 하버드 학위와 교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콩밭이나 가꾸며 살아간 이유는 외적인 것들로부터 자기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6월, 모 교회에서 백소영(강남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의 <'적당한' 충만>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그는 '적당히'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 문제를 명료한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권면했다. 그가 짚은 현대 사회의 특징은 적자생존, 빠르게 앞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시대에 '적당히'라는 기준은 너무 적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나 '적당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라. "꼭 들어맞다(동사)", "정도에 알맞다(형용사)"라고 말한다. 지금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잣대와 기준이 나의 쓰임과 가치를 외면하는걸까? 백소영은 세상이 당신의 윤곽을 정하게 두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윤곽을 확립하고 지켜내라 말했다. 나 자신의 경계 지키기를 포기하거나 세상 잣대에 의해 (내면의 범위가) 적어진 게 아닌지 돌아보자. 자기 윤곽을 잘 지켜내면 경계를 넓힐 수도 있다!
이제 나는 인정, 부와 명예, 요행 또는 소확행, 트렌드 같이 남이 정한 가치 말고 나에게 꼭 들어맞는 "적당한" 가치를 찾아보려 한다.
내 윤곽을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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