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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가지치기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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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상담 선생님과 '가지치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의 주장은 학위 과정에 있으면서 졸업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면 최대한 연구와 논문 집필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반면에 나는 선생님의 의견이 옳고 나 또한 그리 실천하고 싶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럴 수는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 대화는 스펙 과다에 대한 씁쓸함으로 끝이 났다.

스펙(spec)

나의 석사 졸업 동기들, 혹은 연구실 후배들과 종종 '가방끈' 농담을 한다. 예를 들면 박사과정이 자신은 학사랑(석사과정) 겸상할 수 없다고 한다던지(우리끼리는 배꼽잡음)...
모 학생(석사과정)은 일과 학업을 병행 중인데 그가 속한 회사에는 석사가 차고 넘친다고 한다. 심지어 논문 없이 졸업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학교마다 졸업 체계가 다르기 때문). 이과 계열의 아무개 직장인 또한 그가 속한 분야는 석사학위 없는 사람이 극히 소수라고 한다. 아무개 직장인과 그의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를 했었는데 그 자리에서 아무개가 실제로 "야, 우리 중에 석사 아닌 사람 없잖아!" 했고, 전부 폭소했었다.
스펙(spec)은 어떤 물건이나 제품이 가진 기능, 성질, 사양 따위를 뜻한다. 제품은 적확한 스펙을 가져야만 좋다. 과하거나 쓸데없으면 안된다.
'스펙' 개념을 사람에게 사용하면, 그 사람이 가진 학력과 교육 경험, 경력, 각종 자격증을 가르키는 말이 된다. 우리는 양이 많고 질 좋고 화려한 스펙을 만들고자 돈, 시간, 힘을 많이 투자한다. 스펙 '과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과다'라는건 없어진 것 같다. 학력 인플레이션 이슈에 관해서 과연 부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있을까?


선택과 집중

 
다시 '가지치기'로 돌아와서.
재학생 혹은 수료 이후의 연구자, 게다가 일을 하지 않는 연구자라면 적어도 한 번은 유혹에 휘둘리게 된다. 전문 분야의 일을 해보면 연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연구와 관련이 있는 일이라면 논문 집필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 같은데?
그러나 나의 상담 선생님 의견에 의하면, 불확실한 설정을 늘 경계해야 한다. 도움이 되는지는 따져봐야 알테고, 현실적으로 연구에 투자할 돈, 시간, 힘을 분배해야만 하니까 결론적으로 도박일 수도 있다.
더 우스운 사실은 자기 연구와 정말로 밀접하게 관련있는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이다. 외주 혹은 뜬금없는 봉사활동이나 대외활동 하는 이들을 여럿 목격했다(나도 그랬고). 이 경우에는 연구가 하기 싫어 무의식적으로 도피를 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함(내 경우는 도피 맞는 것 같음)...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 조급해지지 않을 수 없는 사회다. 단계가 높아진 내 학위만큼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의 수준도 높다. 이러한 분야의 기관에서는 학위에 더해 부가적인 사항을 지원 조건으로 제시한다. 우대 사항도 아니고 무려 지원 조건으로! 만약 2년 간 성실히 연구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더라도 지원 조건을 갖추려면 각종 자격증이나 경력 사항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특정 분야의 기관에서는 공식적 인증이 가능한 경력만을 이력서에 기입하도록 안내를 한다. 쉽게 말하면, 대학원에서 아무리 큰 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더라도 공식 인증 가능한 서류 한 장 제출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좋은 경험'에 불과함.
2년 간 연구에만 몰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단기간에 각종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야 하고 성과를 얻어야 한다. 그 성과를 소논문으로 작성해 KCI 성적도 받아야 한다. 계열과 대학원 체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학위과정 내에 연구를 진행하고 성과를 이룩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걸 연구자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순수하게 연구자로 살아갈 요량이었다면 과스펙이 큰 문제는 아니겠으나, 학위를 가지고 기관 또는 기업에 가야한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내용과 관계 없는 오로지 감상용 사진. 1월 쇼디치, 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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