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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그 사지 말고 이 사지!한국, 다시 보기 2024. 11. 13. 00:03728x90
2021년 3월, "한국문화예술사" 수업으로 백제 시대 미술을 연구했었다. 책 보고 인터넷 검색하다가 급발진해서 부여로 떠났다. 육안으로 백제 미술을 보고 싶어 국립부여박물관을 포함해 부여의 사적지 이곳저곳 다녔었다. 친구도 사귀고!
많은 유물과 사적지 중에 나는 부여능산리사지가 가장 인상깊었다. 터만 남은 땅인데도, 설명문 하나 없는데도 공간이 마구 상상되더라고.부여능산리사지는 위덕왕 14년 때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되었다. 660년 백제 멸망과 함께 폐허 된 것으로 추정된다. 배수로, 목교와 석교, 공방지, 온돌 시설 등이 있었다. 부여의 상징물인 백제금동대향로는 공방지에서 발견되었다. 능산리사지석조사리감이 출토되었기 때문에 절이 세워진 연대를 추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지 옆에는 부여능산리고분군이 있는데 왕릉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마도 왕릉을 관리하던 사찰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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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림사지의 탑! 먼저, 정림사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사비 도읍기(538~660)에 건립된 사찰이다. 남북 일직선상에 중문, 탑, 금당, 강당을 배치한 백제가람의 대표적 구성이다. 고려시대 석조불상과 유물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백제 멸망 이후 고려시대까지 사찰로 사용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1942년 발굴조사에서 '대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라고 쓰인 명문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 현종 19년(1028) 당시 정림사로 불리었음이 밝혀졌단다. 이후에 이 절터는 정림사지로, 탑은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알려졌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은 "완전한 백제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당평백제기'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탑의 연대를 알려준단다. 최하부의 지대석, 그 주위 하부에 둘러진 지반석, 지대석 위에 신라식 기단을 작게 쌓은 기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을 이룬 받침이 있고, 위로 올라가면서 각이 점차 줄어들어 경사면을 만든다. 각 부가 모두 분리되는 여러 개의 석재로 조립되었고 처마가 위를 향해 반전하는 지붕돌 등이 목조건물 방식을 모방하고 있다. (출처: 안휘준, 『한국미술의 역사』, p.155)728x90'한국, 다시 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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