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및 박사과정 도중 지도교수를 변경하게 되는 상황이 아주 드물게 발생할 수 있다. 학생 사정에 의해 변경을 희망하거나 혹은 연구실 이슈로 변경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어떤 상황이건 변경을 해야 한다면 그동안 지도를 해준 교수와 심도 있게 논의해 학생 본인의 연구에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연구 생활을 하다 보면 방향을 조정해야 할 때가 있겠지만, 이러나저러나 지도교수를 변경하는 일은 학생에게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와 상황이 벌어지는지 알아보자. 내가 직접 겪고 들은 인문, 예술 분야의 일화들이다.
1. 지도교수가 2명
모 선생님은 입학 때부터 연구 계획서를 완성한 상태였고 이에 적합한 지도교수를 선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연구 도중 방법론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모 선생님의 연구 분야에는 A, B, C 유형의 연구 방법론이 있고 선생님은 B 유형을 적용해야만 했다. 모 선생님의 학과에는 B 유형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연구 주제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가? 모 선생님에게는 당혹스러운 질문이었다. 이미 입학 때부터 연구를 진행해 왔고 방법론만 적용해 결과를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결국 지도교수와 함께 사방팔방으로 알아보아 B 유형의 방법론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를 섭외했다. 큰 흐름과 체계는 기존의 선생님께 지도를 받고 방법론 적용에 관해서는 B 유형 선생님께 지도를 받아 졸업 논문을 완성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게 있다. 기술과 사회적 관념, 방법론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오늘날 학생의 연구 주제와 꼭 들어맞는 선생님을 찾기는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일례로 화학 교육과 학생이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한 교육 방법'이라는 주제의 학위논문을 작성한 일이 있다. 당시 그 학생의 지도교수의 연구 분야는 인공지능과 거리가 멀었다. 아마도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것 같다. 쉽게 말하면, 교수는 '모기 뒷다리의 털'에 관한 전문가이고 그의 제자들은 모기 뒷다리나 뒷다리 털, 혹은 모기, 혹은 털을 연구하는 학생들이다. 하늘 아래 똑같은 연구는 있을 수 없는 법. 새로운 기술이나 색다른 방법론에 관해서는 학생 본인이 공부해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앞서 '드물게 있다'라고 말했지만, 교수진에게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지도 선생님이 있는 학생의 연구 주제를 마음대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 그리고 논문을 지도하는 일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업무 외의 일이다. 또 다른 사례로 아무개 선생님은 지도교수와의 불화로 어쩔 수 없이 다른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야 했다. 아무개 선생님 의견에 따르면 자신은 굉장히 억울한 처지였고 새로운 선생님 또한 난처했다고 한다.
2. 수료 이후의 지도교수 변경
석사 또는 박사 수료자는 졸업자와 유사한 신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졸업을 못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자유롭지 않다. 졸업 아닌 수료를 원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졸업을 목표로 둔 수료자라면 울타리 없는 어린양과도 같다. 학위과정 당시에는 행정 등의 지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만큼 대학원생이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이 적어서)을 받을 수 있으나 수료 이후에는 학교와의 연을 만드는 일부터 부담이다. 대부분의 수료자는 근로자이고 그들이 졸업논문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다. 그 시간에 학교와 연락하기는 어렵다. 이와 별개로 (수료자가 근로자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수료자가 속해있던 연구실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지도교수는 신입생을 맞이해 가르치고 마지막 학기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바쁠 테다. 지도교수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 수료자는 왠지 소외된다.
구구절절 수료자 의미에 관해 논한 이유는 학위과정 동안의 지도교수 변경과 수료 이후의 지도교수 변경의 상황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박사 수료 이후라면 더욱 그렇다. 김 선생님 표현에 의하면 6·25 전쟁이나 다름없다. 누군가 키워놓은 만렙 직전의 캐릭터를 맡을 사람이 있을까? '만렙 직전'이라는 사실에 구미가 당길 테지만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퀘스트를 진행해야 한다. 게임은 정해진 알고리즘도 족보도 있지만 졸업논문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수료자는 '만렙 직전'의 캐릭터만큼 갖춘 사람도 아니다.
직장에 다니던 박 선생님은 수료 이후부터 논문 주제를 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지도교수와 마찰이 생겼다. 분명 학위과정 동안 수업을 들으며 합이 잘 맞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연구 계획을 세우려니 의견이 달랐다. 박 선생님 의견에 따르면 실무자와 연구자의 관점 차이가 이유라고 한다. 결국 박 선생님은 지도교수 변경을 원했으나 대학원 규칙에 부합하지 못해 어렵게 되었다.
마지막 사례는 내 경험이다. 석사부터 박사 수료 이후 프로젝트까지 한 선생님과 동행해 왔으나 모종의 이유로 선생님이 자리를 옮기셨다. 나는 앞서 언급한 '졸업을 목표로 둔 수료자'이고 좌절할 시간 없이 새로운 선생님을 찾아야만 했다. 다음의 조건을 적어보았다(이 내용은 이전 지도교수의 조언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그분이 학교와 내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조언해 주셨기에 혹여나 다른 연구자들은 당신 상황에 맞게 조건을 생각하길 바란다).
- 박사 논문을 지도 또는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
-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 선생님에게 부담이 없어야 한다.
- 내 연구 주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1번은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다. 2번은 내게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내가 재학생이었다면 수업이나 연구 프로젝트 등을 통해 새로운 지도교수와 밀도 있게 관계 맺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혹은 이와 별개로 새로운 지도교수가 맡은 학생 수가 많다면 지도받기에 한계가 있다. 3번은 1번과 유사한 맥락의 사항이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낯선 박사 수료자의 논문을 지도하기가 학생만큼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4번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내 연구의 경우 이전 지도교수와 함께 한 프로젝트에서 파생되었기에 4번 사항을 1순위로 생각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학과 범위에서도 다루기 어려운 주제일 테고 나 스스로도 연구의 예상 결론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고민과 상담 끝에 새로운 지도교수를 배정받았고 몇 개월간의 씨름 끝에 연구 주제를 바꾸게 되었다(결국은 이렇게). 위의 4가지 조건에 따라 설명해보자면 나의 새로운 지도교수는 타 연구실을 담당해 석/박사 졸업에 일조해 온 이력이 있다. 그중 나의 석사 졸업 동기들도 있다. 게다가 내 석사학위논문의 심사위원이었다. 그분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고 무엇보다 이전 지도교수의 도움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교수 입장에서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만남을 통해 나(연구 배경과 그동안 해온 것들)를 설명하고 새로운 지도교수의 제안대로 자료를 열심히 찾아가고 하니 그분도 나도 의욕이 생기는 듯하다.
모든 연구자들 힘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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